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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비스는 나쁘지 않은데, 시장 사이즈가 작네요.”
이런 말을 한 번도 안 들어본 창업자는 있을지 몰라도, 안 해본 투자자는 없을 것이다. 스파크랩은 투자 여부를 결정할 때 창업자와 팀을 가장 유심히 보지만, 모든 투자자에게 그렇듯 시장 규모 역시 핵심 고려 요소 중 하나다. 업계 1위 기업이 되더라도 시장 전체의 파이가 작다면 성장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으니, 수익을 생각하면 당연히 투자를 꺼릴 수밖에 없다. 그런데 스파크랩 포트폴리오 중에는 이런 시장 사이즈에 대한 초반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투자를 할 수밖에 없도록 만든 창업자들이 몇몇 있다. 그 중 최근 가장 전망이 어둡다 여겨지는 시장에서 오히려 가장 큰 가능성을 발견해 성장하고 있는, 빌리지베이비 이정윤 대표를 소개한다.
빌리지베이비는 임신·육아 전문 콘텐츠를 제공하는 앱 서비스 ‘베이비빌리’를 운영한다. 빅데이터와 임산부약물정보센터 마더세이프 등 전문기관과 협력해 안전하고 검증된 시기별 맞춤 콘텐츠를 제공하고, 만족도 높은 육아용품을 추천 및 판매한다. 2020년 서비스를 시작한 베이비빌리는 최신 정보인지 알 수 없는 각종 임신 육아 서적, 비전문가들이 공유하는 정보가 범람하는 맘 카페 정도가 정보 습득의 유일한 수단이었던 임신 육아 시장을 혁신하며 론칭 초반부터 큰 호응을 얻었다.
이정윤 대표는 정부 지원 사업 참가 스타트업 심사를 위해 참석했던 발표 자리에서 처음 만났다. 당시 임신, 육아 시장에 대한 깊고 폭넓은 이해도와 뚜렷한 사업 방향성을 갖춘 이정윤 대표의 발표에 깊은 인상을 받았고, 이를 인연으로 스파크랩 액셀러레이터 16기 프로그램에서도 함께 하게 됐다. 16기 프로그램 시작 후에나 알게 된 사실은 이정윤 대표가 첫 만남 당시 임신중이었다는 사실이었다. 본인이 겪고 있는 문제를 직접 해결하겠다고 나선, 우리가 가장 선호하는 타입의 창업가였다. 약 4개월 간의 액셀러레이팅 기간 동안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KPI 달성에 나섰던 이대표는 2021년 4월, 출산 한 달 만에 데모데이 무대 위에 섰고 이후 6개월이 채 지나지 않아 8억 원 규모의 투자를, 1년 후 70억 원 규모의 투자를 유치했다.
빌리지베이비에 대한 투자 심사 당시 스파크랩 내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스파크랩에는 나를 비롯한 네 명의 공동대표가 있는데, 우리 내부에서는 우스갯소리로 “네 명이 만장일치인 회사보다, 싸워가며 투자를 결정한 회사가 더 대박 난다”는 말을 하곤 한다. 빌리지베이비에 대한 우려는 앞서 언급한대로 시장 전망에 대한 것이었다. 우리나라는 전 세계에서 유례없이 빠른 저출산을 경험하고 있다. 2021년 총 출생아 수는 26만562명으로 2020년 대비 4.5%가 감소했다. OECD 국가 중 최저 출산율을 기록하고 있으며 이대로 가면 2060년에는 우리나라 전체 인구가 4천만 명대로 하락할 것이라는 암울한 예측이 쏟아지고 있다. 많은 논의가 이뤄졌다. 출생 인구는 줄어들어도 상대적으로 아이 한 명에게 들어가는 비용은 늘고 있으니 괜찮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그것도 충분치 않게 느껴졌다. 그래도 반드시 빌리지베이비의 투자자가 되고 싶었던 우리는 글로벌 시장에서 답을 찾았다.
이정윤 대표는 이제 막 서비스를 론칭한 빌리지베이비에 해외 시장 진출을 제안한 투자자는 스파크랩이 유일했다고 한다. 이 대표 역시 “국내 시장을 선점한 후에 고려하겠다”라든지, “지금은 국내 시장만 생각하기에도 여력이 없다”는 등의 고민 없이 우리의 판단에 공감하고 바로 해외 진출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베이비빌리 서비스 국내 론칭 바로 한두 달 후의 이야기다. 베트남 서비스를 출시하고 연이어 인도네시아, 태국 시장에서도 서비스를 시작했다. 베트남만 해도 한 해에 150만 명의 아기들이 태어나고 있으니 이미 동남아 주요 국가 시장을 선점하고 있는 베이비빌리에게 임신, 육아 시장은 저물어 가는 시장이 아니라 무한한 성장 기회를 지닌 시장이다. 시리즈A 단계 투자 유치를 위해 다수의 투자자들과 IR 미팅을 하던 이 대표는 빠른 해외 서비스 출시가 성공적인 투자 유치에 얼마나 결정적이었는지 깨달았다고 회고한다. “한국 시장은 선점했고, 이제 해외 시장 진출을 시작하려 한다”의 단계였다면 최근의 어려워진 투자 상황 속에서 투자 유치를 할 수 없었을 거라고. 사업 초반부터 국내 서비스 출시와 거의 동시에 발 빠르게 준비했던 해외 시장 진출이 꽉 닫혔던 투자자들이 지갑을 열게 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실제 베이비빌리는 엄청난 성장 속도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말 기준 아시아 4개국 시장에서 누적 이용자 수 40만명을 돌파하고 누적 콘텐츠 조회 수도 2천만 회를 넘겼다. 현지인으로 구성된 팀을 운영하며 한국에서와 동일하게 각 국가 상황에 맞는 객관적이고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며 큰 호응을 얻고 있으며, 이는 4개국 모두에서 육아 플랫폼 중 압도적으로 높은 앱 체류 시간으로 이어지고 있다.
빌리지베이비는 2020년 7월에 정확한 전문 정보를 제공하는 앱을 출시하고, 높아진 트래픽을 기반으로 실제 매출 전환 가능성을 증명하기 위해 2개월 후 곧바로 앱 안에 마켓플레이스를 만들어 임신, 육아 단계별로 필요한 제품들을 판매하는 커머스를 시작하고, 4개월 만에 월 거래액 1억원 달성, 현재는 월 20억 원 이상의 거래액이 발생 중이다. 잇따른 해외 시장 진출과 동시에 자체 제작 PB상품까지 선보이며 올해는 연 매출 100억 원을 예상한다. 빠르게 테스트하고 빠르게 실패하며 성공하는 것들만 똑똑하게 취하는, 린스타트업의 전형이다.
지난해 말, 투자 가뭄에 시달리는 업계 상황 속에서도 70억 원 규모의 시리즈A 라운드 투자를 유치했던 베이비빌리는 이제 콘텐츠, 커머스에 이어 부모를 위한 카드 발급 및 보험 소개 등 핀테크 분야라는 다음 도전까지 준비하고 있다. 이정윤 대표, 그리고 사업 초창기부터 현재까지 계속해서 함께 하고 있는 베이비빌리의 인재들의 끊임없는 도전이 어려운 시기를 견디고 있는 모든 초기 스타트업들에게 용기를 줄 수 있길 바란다.
Written by Eugene Kim, Co-founder at SparkLab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