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모든 초기 단계 투자자를 대변할 수 없지만, 스파크랩 역시 초기 스타트업 투자 결정에 있어 창업자를 가장 중요시 하는 편이다. 어떤 창업자가 왜, 누구를 위해, 어떤 문제를, 어떻게 풀고자 하는가. 이 모든 질문에 대한 가장 좋은 답변은 창업자가 해당 사업 분야에서 오랜 기간 커리어를 차곡차곡 쌓아왔다면 문제없이 나오기 마련이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초기 스타트업 투자가 성공적일 때 창업자와 투자자 양쪽에 정말 큰 짜릿함을 안겨주는 경우는 창업자의 백그라운드와 사업 분야에 큰 갭이 있는 케이스들이기도 하다. 스파크랩의 포트폴리오 중에도 그런 창업자들이 적지 않지만, 오늘은 리코의 김근호 대표를 소개하고자 한다.
리코는 탄소 저감, ESG 키워드에 대한 전 세계적 관심도가 높아지기 이전부터 기업들을 위한 폐기물 관리 플랫폼을 선보이며 낙후된 이 분야의 최전선에서 가장 빠르게 디지털 전환을 이뤄가고 있는 기업이다. 축축하고, 악취나고, 불쾌하고, 조금만 수거가 늦어져도 부패가 시작돼 처리에 애를 먹기로 악명이 높은 음식물 쓰레기 관리로 2천 개가 넘는 고객사를 확보하며 매년 두세 배의 성장세를 기록하고 있다.
이렇게 누구보다도 ‘손에 잡히는’ 실물을 다루는 사업을 하고 있는 김근호 대표는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주식 옵션 트레이더 출신이라는, 지금과는 크게 대비되는 백그라운드를 가지고 있다. 큰돈을 만지는 게 목표였다는 그는 미국 노스웨스턴대학에서 산업공학, 경제학을 전공하고 트레이더의 길로 나섰지만 여러 금융 위기를 거치며 좀 더 실질적이고, 의미 있는 업에 대한 갈증을 느꼈다고 한다. 그렇게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우연찮은 계기로 음식물 자원화 전문기업에서 근무를 시작하게 된다. 충남 및 수도권 지역의 음식물 폐기물을 수거해 고품질 유기 비료를 만들고, 친환경 곤충사료로 재활용하는 기업, 그것이 시작이었다.
트레이더로 근무하며 쌓았던 감각으로 폐기물 시장의 디지털화가 가져올 엄청난 잠재력을 발견한 것이다. 기업은 매일 매 순간 폐기물을 만들어내고, 누군가는 그 폐기물을 운반해서 마지막 처리 과정까지 거치게 해야 하지만 그 과정에 있는 수많은 기업의 소통은 얽힌 거미줄과도 같았다. 폐기물 시장의 규모가 25조 원에 달했지만, 그 누구도 선뜻 이 엉킨 타래를 풀기 위해 나서고 있지 않았다. 세상 아래 새로운 것은 하나도 없다지만 김근호 대표는 그 안에서도 블루오션을 발견했다. 김근호 대표가 리코의 초기 모델로 스파크랩을 찾았을 때, 리코는 스파크랩이 투자 결정 시 가장 매력적으로 느끼는 키워드를 모두 갖추고 있었다. 데이터, B2B SaaS, 디지털 전환, 거기에다 연일 ESG, 기업들의 탄소 저감 의무에 관한 기사들이 매일같이 쏟아지고 있었다. 당연히 리코에 대한 투자 결정은 신속히 내려졌다.
스파크랩이 매력적으로 느끼는 창업자가 어떤 사람들인지에 대하여 조금 더 이야기한다면 사업의 A to Z까지 직접 진하고 치열하게 체험하는 이들일 것이다. 업박스의 로고가 박힌 후드집업을 입고 폐기물처리 트럭 앞에서 굵은 땀을 쏟으며 일하고 있는 김근호 대표의 모습은 주변에 그리 낯선 모습이 아니다. 2019년 1월 사업에 뛰어든 그는 리코의 핵심 임직원과 함께 약 1년간 기존 관행 그대로 폐기물 수거에서부터 운송, 처리까지 전 단계를 직접 경험했기 때문이다. 첫 대형 고객이었던 코엑스에서 하루에 10톤씩 발생하는 음식물 쓰레기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그가 가진 트레이더로서의 백그라운드와 새로 몸담게 된 폐기물 관리 분야의 경험이 융합해 시너지가 나기 시작했다.
2020년 3월 리코가 본격적으로 시장에 내놓은 ‘업박스’는 사업장의 배출 환경 조성부터 운반, 데이터 관리까지 전반의 과정을 전문적으로 관리해주는 기업형 폐기물 수집·운반 종합 서비스이다. 폐기물을 수거할 때마다 정확하게 배출량을 측정하고, 고객은 측량 값 및 환경 지수, 처리 과정을 업박스의 클라우드에서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2020년 출시 후 같은 해 500개, 다음 해에는 900개까지 서비스 대상 사업장 수가 가파르게 늘어났다. 고객군도 삼성웰스토리와 같은 기업형 급식 사업자에서 쿠팡, 파스토와 같이 대규모 물류센터를 보유한 기업, 호텔, 복합 시설까지 계속해서 확대 중이다. 폐기물 23종에 대한 수거 운반 업체로서 공식 허가를 받았기 때문이다. 지난해 말 120억 원 규모의 시리즈B 투자를 유치한 리코는 이제 업박스의 공식 론칭 후 불과 3년 만에 폐기물 자원 순환하면 기업들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기업으로 입지를 다져 나가고 있다. 김근호 대표와 같은 창업자, 그리고 그와 같은 비전을 공유하는 리코의 팀이야말로 우리가 세상 모든 분야의 혁신은 스타트업이 이끌어 나갈 것이라 믿는 가장 큰 이유다.
Written by Eugene Kim, Co-Founder at SparkLabs